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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슬생입니다. 이번에는 <연극 빛나는 버러지>를 관람하고 왔어요.

 

 

 

이번 공연은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작년 11월 29일부터 올해 1월 8일까지 진행되었어요.

참고로 드림아트센터 4관은 건물 5층에 있습니다!

 

2023년 1월 7일 오후 7시 공연 캐스팅입니다.

Jill - 송인성

Ollie - 배윤범

Miss Dee - 정다희

공연시간은 총 120분이고, 인터미션은 없습니다.

 

제 자리는 1층 F열 오른쪽이었어요. 극장 크기가 작다보니 어느 자리에서 봐도 잘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아요. 맨 뒤 구석에 앉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기분..

아래는 빛나는 버러지 시놉시스.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인 올리와 질 부부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험한 동네, 쥐가 나오는 아파트가 걱정인 부부에게 어느 날 시청에서 집을 공짜로 주겠다는 편지 한 통이 날아온다.
반신반의하며 집을 보러 간 부부에게 미스 디가 계약서를 들이민다.
아무런 시설도, 가구도 없는 집이지만 이미 공짜 집에 반해버린 부부는 덜컥 계약을 해버린다.
그리고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관련 영상

 

 

 

 

 

연극 빛나는 버러지 커튼콜

 

serviceapi.nmv.naver.com

 

개인적인 짧은 후기

 

주택 대란의 시대, 꿈의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빛나는 버러지>는 영국 출신 작가 필립 리들리가 쓴 희곡입니다. 그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가해 극대화된 연극적 효과를 일으키는 영국 특유의 연극기법 ‘대면극’의 선구자인데, <빛나는 버러지>도 이와 흐름을 같이하는 블랙 코미디 풍자극입니다. 공연을 보고 난 뒤에 저는 씁쓸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 수수께끼의 인물 미스 디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정부와 미스 디는 스위프트 부부에게 집을 줬을까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복지를 위해?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서?

저는 그들이 나서고 싶지 않은 꺼림칙한 일을 부부에게 떠넘긴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직접 노숙자들을 없애버릴 수가 없으니, 그 대안으로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가난할 뿐만 아니라 신앙심이 약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을 이들을 찾아낸 게 아닐까..

스위프트 부부처럼 위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에게 리노베이션 하우스를 제공하고, 사회의 골칫거리들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후에 집을 받았던 사람들은 결국 현 정부를 지지하는 탄탄한 세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봤을 때 미스 디의 정체는 빅 브라더를 상징하는 관념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 미스 디가 말하는 어린이 여러분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스 디가 스위프트 부부를 부를 때, 또 제 4의 벽을 깨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 때 모두 '어린이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가 흔히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순수하다고 하잖아요. 아직 사회화가 덜 된 시기이기도 하고, 어른들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아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스 디(정부)가 이 가족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부부가 살인을 저지르고도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적인 모습보다는 현재의 충동, 욕심에 휘둘릴 모습을 예상하고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비인간성

극 초반에는 선하게 등장했던 인물들이 더 좋은 집을 위해 스스로 인간성을 점점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지금 우리 사회를 투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어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비를 조장하는 물질만능시대를 살고 있고, 부부는 처음에는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서 행동했지만, 이제는 끝도 없는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슴치 않고 살인을 저지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본인의 자녀까지 동원할 생각을 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죠. 사회가 부추기고 만들어낸 그들의 이기심...

 

-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모습과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공연 마지막에 질이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관객을 자신과 동일 선상에 놓으면서 본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이 소름끼치고 무섭지만, 정작 우리는 자신들을 향한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충분한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 존재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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